종·횡·무·진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② 소녀시대

종·횡·무·진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② 소녀시대

익_23pq9y 292.9k 08.06.20
[중앙일보] 이번에 만난 사람은 '소녀시대'다. 걸출한 연예기획자 이수만이 '보아' 이후 야심차게 내놓은 아이돌 그룹이다. 연예인 인터뷰는 정치인 인터뷰보다 어렵다. 조용필, 안성기와 같이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니고서는 엄격한 자기검열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관대하지 않다. 한마디의 말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더구나 인기 정상의 아이돌 그룹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그래서 오늘 답변도 누구의 대답인지 구체적인 이름을 따로 지칭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중이 인터뷰를 통해 연예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고작해야 '방귀는 뀌는가?' '만약 뀐다면 냄새는 나는가?'의 수준에서 맴돌게 된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인터뷰는 실패다.

종·횡·무·진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② 소녀시대

1. 인트로
Q (청담동의 한 감각적인 카페에서 7명의 멤버를 만났다. 도저히 한 자리에 모두 모을 수 없다는 매니저가 그나마 일정을 쥐어짠 결과다. 요즘 일정이 가장 바쁘다는 윤아티파니는 결국 따로따로 만나야 했다.)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Q. (7인 1색의 인사였다. 날아갈 듯 예쁜 목소리들이었지만, 악보를 두고 화음을 조율하듯 일체감이 느껴졌다. 카페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 이쪽으로 쏠리고, 여기저기서 폰카가 올라왔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 계세요.

▶"네… '뉴 하트' 원작자 아저씨요."
(지휘봉을 따라 입술이 움직였다. 절대 연습문제를 풀고 오면 안 된다고 매니저에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투자 평론가요'라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 

Q. 저는 여러분에게 별로 관심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어른들에게 여러분의 진짜 모습을 이해시키고 싶어요. 어쩌면 앞으로 여러분이 연예활동을 하는 동안 이런 얘기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몰라요. 소개부터 할까요?

▶"유리요, 효연이요, 제시카, 태연, 수영, 서현, 써니예요."
Q. (일부러 노트를 꺼내지 않았다. 권혁재 기자가 잔뜩 긴장한 매니저를 순간 포착한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야 까르르 웃음이 터지며 얼굴이 풀리기 시작했다.)

데뷔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
▶"설레고, 두근거리고, 심장이 간질거렸어요. 내 노래와 춤, 끼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전날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왔어요. 쇼 케이스에서 끼를 보여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눈앞이 하얘졌어요.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와 같은 예상 답변이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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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탄생
Q. 몇 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견딜 만하던가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어요. 허황된 꿈이었죠. 보아 언니를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이미 끼가 있었던 거죠. 시작만 하면 당장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다치죠. 많이 아프고, 하지만 그러면서 굳은살이 박이죠. 애착이 생기고, 나중에는 집착이 생겨요. 이를 악물고 이루겠다는…." "안 힘들면 거짓말이죠. 슬럼프에 빠지고, 그때마다 울고, 서로 위로하고, 억지로 참죠." "처음에는 신기했죠. 연예인이 되는 연습을 한다는 게 그저 신났어요.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춤추면서 발이 너무 아팠어요…."

Q. ('사육된 아이들' '박제된 인형', 이들을 고깝게 보는 시각이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연예기획사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한쪽에 분명히 있다. 아프겠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꼭 물어야만 하는 질문들이었다.) 그렇게 서로 경쟁하면 기분이 어때요? 친구를 이겨야 사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쉽게 꿈을 꾸죠. 하지만 부딪치고 배우고 연습하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죠. 그중에 많은 아이가 실망하고 떠나요. 회사에서 내보내는 아이들도 있고, 스스로 그만두는 아이도 있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이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라는 걸요." "서로 의지가 되죠. 이루겠다는 각오를 서로 심어주고 위로해요. 끈끈해지는 거죠. 그래도 힘들었어요." "저는 SM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캐스팅되어 왔는데, 그때 30~40명이 같이 왔어요. 도중에 나간 친구, 회사에서 금방 내보내는 친구, 그것을 보면서 회의가 들죠. 하지만 그래도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게 좋았어요."

Q. (이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눈높이에 있었다. 아이들은 연습생 시절 이미 경쟁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성숙해졌다. 애착이라는 말을 할 때 소녀의 눈에서 이미 세상을 보아버린 처연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장을 뛰거나, 영어를 배우려고 비행기를 타는 아이들과 뭐가 다를까.) 그래도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생존경쟁이 아닌가요?

▶"'쟤를 끌어내려야 해' 그런 경쟁자가 아니라 발전을 위해 욕심을 내는 거죠. 더 잘하는 아이보다 더 잘하려는 욕심 같은 거죠.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내가 올라가려는 거예요. 그런 욕심이 큰 친구들이 결국에는 자기만의 꿈을 이루죠. 나만 생각하고 앞을 보고 가야 해요."

Q. (혹시나 기획사의 모범답안 아닐까? 연기에 넘어갔다고 하기엔 아이들의 눈은 진지했다.) 교육받아야 할 시간에 춤과 노래만 하면 나중에….

▶"사회생활에서 많이 배워요. 교실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요. 연습실에서 교육받으며 배우는 것도 크죠. 연습실도 작은 사회예요. 같은 목표를 가진 애들이 모인 학교 같은 공간인 셈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희들은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다른 애들보다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건 맞아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배우려고 하죠. 책도 읽고, 신문도 보고, 저희들 정말 욕심이 많아요."

Q. 그래도 어른들의 눈에는 제대로 영어 한마디라도 할까? 같은 의구심이 있거든요.
▶"'쟤들이 제 이름자나 제대로 적을까'라는 건 연예인에 대한 고정관념이에요. 우리는 꿈이 가수예요. 가수가 교수가 되려는 아이보다 인수분해를 못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꿈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이 공부예요. 누구나 꿈을 이루려고 공부하잖아요."

Q. (이어 이들이 보여준 회화 수준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네이티브 수준이었다. 그것도 중국어와 영어로 말이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고 있는 거다.) 아쉽지는 않은가요? 다른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에 비해?

▶"잃어버린 게 크죠. 학교 생활이 그리워요. 누구나 다른 세계가 부럽듯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있고, 다른 아이들과는 세계가 달라요. 아이들이 즐기는 축제, 친구들과의 수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고 막 수다떨고 놀잖아요. 그게 제일 그립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추억이 있어요." "제가 DJ를 했거든요. 청취자 사연을 읽어요. 그럼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잖아요. 슬프거나 기쁘거나 예쁜 인연 같은 거요. 그때마다 슬펐어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같은 느낌, 그런 기분이 들어요."

Q. (다른 세계라고 했다. 내가 가진 것 외에 다른 것도 같이 가지려 하면 나쁘다고도 했다.) 이 중에 잘나가는 친구들이 있고, 뒤처진 친구들이 있죠. 이때 기분이 어떤가요?

▶"각자의 시기와 때가 있어요. 순서가 다를 뿐이에요. 시기, 질투는 없어요. 응원하죠. 우리는 '덕분에'라는 말을 많이 해요. 어느 한 친구가 빠르면 나는 대신 천천히 기다릴 시간이 있다는 데 감사하죠. 더 준비할 수 있잖아요." "제가 앞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먼저일 뿐이죠. 같은 차를 타고 간다면 누가 먼저 타는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Q. (교육의 힘일까? 기획자 이수만이 노래와 춤 외에 이 정도의 인성을 길러놓았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물정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소녀시대도 해체되지 않겠어요. SES나 핑클처럼.

▶"그런 시기가 오겠죠. 이미 재능에 따라 역할이 바뀌기 시작하고 있어요. 또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청순에서 섹시 컨셉트로 바뀔지도 모르죠. 누가 연기를 위해, 또 누구는 다른 목적으로 떠날 수 있어요. 그때 가서 '우리는 소녀시대잖아'라고 할 수는 없죠."

Q. 만약 말이죠. 지금 할리우드에서 이 중 한 사람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맡기고, 또 그 정도 금액의 전속계약 제안이 들어왔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솔직히 말해 주세요.

▶"저는 안 떠날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건 소녀시대의 나를 보고 제안한 거지, 나 혼자를 보고 제안한 건 아닐 테니까요. 우린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어요. 소녀시대가 있어서 내가 있지, 아직은 나 하나가 따로 그만큼 가지 못했어요."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그랬다. 물론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는데, 다른 아이가 '나는 떠날게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답변은 어지간한 정치인 뺨치는 수준이었다. 이수만의 SM은 이 친구들에게 '겸손'이라는 가치를 상당한 무게로 주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3. 아이콘
오타쿠: '당신' '댁'이라는 뜻을 지닌 이인칭 대명사는 매니어보다 더욱 심취해 집착하는 사람을 말하는 일본어다. 한국 네티즌들은 이 말을 차용해 '오덕후'로, 소녀시대 매니어들을 가리켜 '소덕후'라 부르기도 한다.

태연, 유리, 제시카, 써니, 효연, 수영, 서현, 티파니, 윤아. 당신이 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면, 또 그들의 데뷔 경로인 '한·일 울트라 아이돌 듀오 오디션'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댄스짱'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 등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한 장 얻기 위해 그들이 모델로 나선 '○○치킨'을 배달시킨 적이 있다면 당신은'소덕후'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Q. 불편한 얘기 좀 하죠. '소녀시대'라는 말이 정말 순수하다고 느끼세요? 청순을 가장한 섹시코드가 숨어있다고 보지는 않나요?

▶"최소한 우리가 만든 컨셉트는 아니에요. 그렇게 보는 분들도 있죠. 인터넷에 느끼한 글을 보면 아프죠. 하지만 우리는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힘이라고 생각해요. 성장의 이미지를 보여준 거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물론 나이가 들면 달라지겠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달리 보는 건 그렇게 보는 분들의 문제죠. 왜 꼭 그렇게 보는 거죠? 우리는 아직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있지도 않는 걸 억지로 그렇게 보는 게 오히려 문제 아닌가요?"

(하지만 정형화된 화장, 외과 의사인 내 눈에 비친 지울 수 없는 성형의 흔적, 미니스커트, 앉음새에서 매무새까지, 이렇게 느껴지는 가공된 흔적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입혀진 '소녀' 아닌 '숙녀'의 모습일 것이다.)

Q. 요즘 쇠고기 수입 반대 포스터에 '촛불소녀'라는 그림이 등장해요. 어린 소녀가 촛불을 안고 '지켜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소녀라는 말에는 이런 청순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과연 소녀시대의 소녀가 이런 소녀일까요?

▶"저희는 여리고, 착하고, 보호하고 싶은 소녀는 아니죠. 저희는 오히려 즐겁게 해드리고, '힘내세요'라고 하는 소녀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보여주고 싶은 소녀는 갸냘픈 소녀가 아니라 발랄하고 청순한, 그리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친구 같은 소녀에요."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질문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
Q. 요즘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은 어떻게 봐요?
▶"용기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발언을 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는 건 아직 너무 적고, 판단할 능력이 없잖아요. 안다고 할 수도 없죠. 마음으로는 느끼지만, 아직 말은 두렵죠. 연예인이 아니라면 마구 하고 싶은 말들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저희가 어려요."

(매니저의 얼굴이 일순 긴장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니저의 수신호가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알고 있었다.)

4. 현실과 이상 사이
Q. 경쟁 상대인 원더걸스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텔 미'로 인해 여러분보다는 기성세대에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소녀시대와 비슷한 경쟁자가 생긴 거죠. 서로 잘해야죠." "하지만 서로가 추구하는 컨셉트나 음악이 달라요." "서로 자극이 되죠, 더 잘해야 한다는.(상투적인 답 아니냐, 진심을 얘기해 보라는 말에 반격이 들어왔다.) 왜 속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우리가 인터뷰를 하면 기자 아저씨들이 그래요. '외우고 왔냐? 질투 안 나냐? 에이 말도 안 돼' 다들 이래요. 왜 저희 말을 믿지 않으시죠?"

(솔직히 당황했다. '그게 편견이란 거지, 연예인. 특히 아이돌 그룹에 대한 색안경 같은 거야. 왠지 만들어진 인형 같은 느낌, 미안하지만 그래'라고 솔직히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Q. 책은 얼마나 읽죠? 그럴 만한 시간은 있어요?
▶"지난주에 읽은 책은 리버보이고요, 지금 읽는 책은 '3월은 붉은 구름을'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소설 같은 걸 주로 많이 보게 되죠." "책을 많이 보면 좋은데 시간이 잘 안 나요. 낮에는 스케줄이 있고, 밤에는 힘들어요."

Q. 가장 힘들고 상처받을 때는 언제죠?
▶"일전에 어느 기자분이 순간 포착해 합성한 '효크'라는 이름의 사진이 떠돌았어요. 동영상에서 순간을 캡처하면 이상한 장면이 나오잖아요. 만드신 분들은 장난이시겠지만 저희들에게는 심장에 칼이 꽂히는 거예요. 저희는 연예인이고, 더구나 아이돌 그룹이잖아요. 상처가 컸어요." "말은 날아다니고, 소문이 찐빵처럼 부풀잖아요. 연예계라는 곳이, 누군가는 손가락 하나 클릭하면 되지만 그게 쌓이면 사람을 죽이는 상처가 되죠. 그게 우리 숙명이라고 하지만 저희들은 아직 감당하기 어려워요."

Q. 어린 나이에 알려지는 것이 부담은 안 되나요?
▶"사적인 시간이 힘들어요.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쓰고 나가면 그게 더 티내는 거라지만 그래도 누군지는 모르잖아요. 처음에는 시선을 즐겼어요. 오히려 몰라보면 섭섭했어요. 아직도 나를 몰라보는구나 서운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불편해요. 참 이기적이죠? 하지만 길거리를 가다가 누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고 싶으면 보통은 물어보고 찍잖아요. 안 그러면 '도촬'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도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죠. 소녀시대의 나는 있는데 그냥 나는 없어졌죠. 그런데 이젠 다시 편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도 예전에 그랬더라고요. 좋아하는 연예인을 우연히 만나면 다시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러니 사진 찍고 악수하고 싶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그게 당연하데요. 내 불편만 생각하면 팬에게 내가 필요할 때만 보여주는 거잖아요."

(과연 이게 19세 여고생의 대답일까?)
Q. 꿈이 뭐였어요, 연예인 말고.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디자이너요. '엔터' 사업을 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요. 춤을 배우고 있었을 거에요. 아나운서요. 연기자요. (다들 하나씩 이렇게 말하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꿈이 있었는데 이젠 꿈을 버린 지 오래 됐어요."

Q. (꿈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아이의 말에 습기가 느껴졌다.) 왜 버렸어요? 꿈이 뭐였는데요.

▶"비웃으실지 모르겠는데, 국제변호사요. 저는 그게 꿈이었어요. 뉴욕대에서 그것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2개의 꿈을 좇았죠. 12세에 지하철에서 캐스팅되어서 이젠 그 꿈을 접어둔 거죠. 하지만 지금의 꿈을 이루고 나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인터뷰지만 소녀의 접어둔 꿈 이야기를 듣고도 내 잇속만 차리려고 질문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Q. 연예 기획사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일순 앞자리에 있던 매니저와 뒤에서 귀를 기울이던 로드매니저가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우리 회사는 상당히 좋아요. 이수만 아저씨도 잘 해주시죠.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선생님이시고요. 하지만 다른 연예인들의 기획사 문제를 들어보면 우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분이 많다고 해요. 비록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나죠. 같은 연예인이니까요."

-(소녀시대는 합숙을 한다고 한다. 공연이 없거나 연습이 없어도 그건 원칙이라고 했다. 심지어 30분의 시간도 내기 어려워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했던 티파니와 윤아의 경우에도 그건 원칙이었다. 어린 소녀들에게 스캔들이나 구설수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 탓일 거다.)

Q. 요즘 팬클럽 문제로 마음고생이 많죠? 진정한 팬 문화는 어떤 거라고 생각해요?
▶"신나게 같이 즐기시면 좋겠어요. 연예인이란 게 그런 거 잖아요. 같이 즐기고 느끼고, 그런데 파헤치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분석하고요. 아쉽고 속상하죠. 그것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연예인에 대한 감정도 군중심리가 있어요. 댓글을 볼 때마다 그걸 깨닫죠. 때론 두려워요."

(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연예인 팬클럽끼리의 감정싸움으로 소위 10분 침묵 사건이 벌어지고, 소녀시대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일이 일어났다.)

 
5. 마침
대중 연예인과 아티스트의 차이는 소비의 기호에 있다. 연예인은 대중이 요구하는 아이콘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대중의 요구에 순종한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자신의 영감이 대중의 기호를 선도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콘이 되어 대중을 복종시킨다. 소녀시대는 아직 대중 연예인이다. 어쩌면 이들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수만의 SM이 아티스트로 대우해 주는 것이 떨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수만이 아티스트로 대우해 주더라도, 대중이 이들을 미소녀 아이템으로만 소비하려 드는 한 그 길은 요원하다. 스스로 선택한 '소녀'의 굴레를 이제 어떻게 벗어나는가. 바로 이 점이 지금 소녀시대에 던져진 가장 난해한 숙제 아닐까.

박경철 donodon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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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근성의빠심 2008.06.20 14:05  
태연이 키가 큰거 같은 느낌??

종·횡·무·진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②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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