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사가 되고 싶어서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공부하여 이곳에 입학했으며,

따라서 학교와 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며칠 전 술자리에서 산산히 깨어졌습니다.

이곳 광주 조선대는 그야말로 술문화가... 한 마디로 엉망이더군요.

22살 23살의 어린 여자 후배들에게 강제로 소주를 들이붓고, 원샷을 하지 않으면 얼굴을 굳히며 은근히 화를 내고,

화장실에서 토하고 온 여자들에게 또다시 강제로 붓고..

불쌍한 1학년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위기 깰까봐 거절도 못 하고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소주를 다시 원샷하고,

잔이 비면 즉시 다시 따르고 또다시 원샷을 강요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여자가 술을 못 마시면 왠만하면 권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

여기는 여자가 술이 약하다는 이유로 술로 죽여 보려고 오히려 더 악귀같이 먹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성별이 여자일수록 더 먹이더군요.

술을 못 마신다는 말도 전혀 통하지도 않더라고요.. 맥주도 제대로 못 마시는 애들에게 소주를 강압적으로 마시게 하는 꼴이란..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몸도 가누지 못하고 선배들의 자취방으로 실려 갔으며

다음 날 꽤 많은 숫자가 수업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피트로 인해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신입생들이 많은데, 다들 대놓고 말은 못 하고 불안으로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 중심으로요.

여기 선배들이랑 어울리다가 무슨 꼴 당하는 거 아니냐고..

저 상태에서 선배 중 몇 명이 음험한 마음이라도 품으면 떼강간이 일어나는 거고,

후배 중 한 명이 술에 취해 발을 헛디디거나 사고라도 나서 죽으면 '잘못된 신입생 환영회 문화로 인한 사망자 발생' 이 되는 거겠죠.

도대체 약대에서 4년동안 뭘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러다 한 명이라도 죽던지 사고라도 나야 정신을 차리지, 아니, 정신 못 차리려나요.

사고 당한 여학생이 아마도... 돈독한 조대약대의 술문화를 방해하는 이물질 취급 당할 것 같습니다.

(뒤늦게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조선대가 집단 술문화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5월 장미축제가 되면 아침 10시까지 술파티가 이어지고 정원 곳곳에 토사물이 흥건하다고 하네요.

이런 분위기에서 술 못 먹어서 죽어버리면 비리비리하게 죽은 놈 잘못이라고 취급당하겠죠, 조선대 문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교수님들마저 이러한 집단 술문화에 은근히 동조하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아마도 선배가 후배한테 술을 처먹이면 선후배 간 관계가 돈독해 지리라고 착각이라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대 약대 교수님들은 본인도 아마도... 그런 분위기에서 공부 해 오셨을 테니까요.

4년제와 6년제가 서로 다르다 보니 선배들이 저보다 한참 어린데

새파랗게 어린 애들이 제게 "조대는 전통적으로 깃수로 선후배를 따졌다" 고 하면서

원샷을 강요하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습니다.

소주 2병을 마셔보기는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그것도 이토록 강압적이고 거북한 분위기에서 말입니다.

(나이 어린 애들은 3병까지 강제로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술도 제대로 못 먹는 애들을.)

집에 가기 전에 다 게워냈고,

내가 이런 꼴을 당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약대에 온 건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서 서러워져서 울었습니다.

심각하게 반수를 생각했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몇 번이나 고민하고 몇 번이나 포기했습니다.

대신 앞으로는 절대로 선후배 간 어떠한 행사도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열심히 공부 해 대학원을 가든 어떻게 해서든 학력세탁을 해야 겠습니다.

나의 대학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글이 알려지면

자랑스러운 조대 약대 선배님들은 이런 글을 올려 선후배 간 돈독한(?) 관계를 깨려는

불순분자를 색출해 내려고 눈을 부릅 뜨시겠죠.

--- 디시 플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