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의 위엄

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의 위엄

익_d75nk3 4.1k 21.03.31
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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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의 위엄

總一百一十三萬三千八百,號二百萬,其餽運者倍之
(총 병력은)113만 3,800명이고, 200만이라 (과장해서)불렀으며, 식량 운반자는 그 배였다.

 

『수서』 「제기(帝記)」 권 4, 양제 - 하편





모두 1백 13만 3천 8백 명인데 2백만 명이라 하였으며, 군량을 수송하는 자는 그 배였다. (중략) 매일 1군씩을 보내어 서로 거리가 40리가 되게 하고 진영이 연이어 점차 나아가니, 40일 만에야 출발이 완료되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 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에 걸쳤다. 어영(御營) 안에는 12위(衛)·3대(臺)·5성(省)·9시(寺)를 합하고, 내외 전후 좌우(內外前後左右) 6군을 나누어 예속시키고 다음에 출발하게 하니 또한 80리를 뻗쳤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23년 1월 기사





당시 동원된 수나라의 전투병만 실제로 100만을 넘겼고 

흔히 허장성세라는 호왈도 '200만' 이라 일컬었을 정도, 


거기다 전투병의 배 이상인 보급인원까지 고려한다면 

최소 340만 이상이 고구려 원정에 동원되었다고 사서에 명확히 기록됨.





'전근대 국가도 아니고 이러한 대규모 인원을 편성할 여력이 어딨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당시의 수나라는 문제의 '개황의 치' 가 큰 성공을 거두며 

"창고에 곡식과 피륙이 넘쳐 썩어나고, 더 이상 쌓아둘 곳도 없어서 

그것을 각 군현에 조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분배했다." 

기록할 정도의 역대급 재정상태를 보이고 있었고, 


등록된 기준으로도 호수 890만에 4,600만여 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당시 세계 원탑의 초강대국이었다. 게다가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양제 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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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으로 직접 2,700km 이상의 물길을 만들게 하는 정신나간 국가였다.

 

 

 

그리고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이때 동원된 원정군의 규모는 

전근대 시기를 지나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때까지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 :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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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뒤지거나 진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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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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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이전에도 수나라는 1차 고수전쟁때 30만을 동원했으나 고구려 원정에 실패했다.

수 양제는 이후 3차 고수전쟁에 전투병만 40만을 동원했으나 또 실패했다.

4차 고수전쟁때는 비사성을 함락시켰지만 결국 또 실패했다.

 

 

 

결국 수나라는 고구려 원정에 온 국고를 쏟아부으며 

장렬히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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