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_6vm7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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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5

왜 씨름선수로 키울 생각을 하셨어요.
중학교 때 호동이 담임이 씨름을 권유했어요. 나도 호동이 먹성을 보고 ‘씨름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마산에서 고기장사를 했는데, 그때는 고기장사를 한다고 하면 백정이라고 했던 시절이에요. 그래도 나는 우리 식구들 먹여 살리는 게 더 중요했어요. 우리 식구 입으로 먹을 게 들어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어. 그래서 고기 들어오는 날에는 최고 좋은 부위를 집으로 가져갔어요. 육회 알죠? 호동이 엄마가 그걸 참 잘했거든. 고기를 칼로 잔잔하게 썰어서 참기름 한 숟가락, 배 조금 썰고 조물조물해서 만들어서 호동이를 먹이곤 했어요. 호동이가 혼자서 600g은 너끈히 먹었어. 양푼에다 밥 먹는 거 보면 진짜 기가 막혔죠. 그래서 씨름을 시켰어요. 지금은 그때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먹는 겁니다. 밖에 나가 먹으면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더라고.
어린 시절의 강호동 씨는 어땠나요.
우리 고향이 진주시 이반성면 길성리인데 호동이가 거기서 태어났어요. 호동이 엄마가 호동이를 가졌을 때 한약을 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갓난아기 덩치가 꼭 세 살 같았지요. 동네에서 싸움이 될 만한 아이가 없었고, 똑똑하기도 참 똑똑했어요.하루는 또래보다 어려 보이는 애들이랑 놀고 있길래 왜 이렇게 어린 애들이랑 놀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아부지, 야들 6학년입미더.”(그때 강호동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라고 하더라고요. 막내라 귀여움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엄마랑 같이 잤을 정도니까. 곡식은 남의 것이 좋고 자식은 제 것이 최고라는데, 그 말이 딱 맞아요. 나는 누가 뭐래도 우리 호동이가 진짜로 제일 예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