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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8
1차 사건
제10회 서울 아시안세임 개막식을 하루 앞둔 1986년 9월 19일 동네 아이들이 목초밭에
들어갔다가 시신 한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1986년 9월 15일 수원으로 농작물을 팔러 나갔다가 실종된 71세 이씨의 시신이었습니다
바로 화성연쇄살인사건 첫번째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사인은 목조름에 의한 질식사였으나 경찰들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합니다
2차 사건


1986년 10월 20일
1차사건에서 500m떨어진 배수로에서 당시 선을 보고 귀가중 실종됐던 25세 박씨가 숨진채 발견이 됩니다

첫번째 사망한 이씨와 박씨 소지품 주위에는 담배꽁초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박씨 사건 역시 단순 변사처리가 되는데요

그이유는 바로 86아시안게임으로 형사들이 그쪽으로 다 투입이 되었기때문에 달랑 형사 3명이서조사, 단순 처리를 한 것입니다
3차 사건


그후 1987년 4월 23일에는 축대공사 현장에서 1986년 12월 12일 에 실종된 25세 권씨의 시신을 발견, 발견 당시 권씨는 자신의 거들을 입에 물고 있었으며 머리에 팬티를 뒤집어쓴 채 발견됩니다

4차 사건
1986년 12월 14일 수원에서 상견례를 하고 귀가하다 실종된 23세 이씨는 일주일 후 들깨 단 안에서 사망한채 발견됩니다

당시 이씨가 착용하고 나갔던 스타킹 두켤레는 그녀를 결박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옷을 벗겼다가 도로 옷을 모두 입혀놓은듯한 흔적을 발견하는데 팬티는 거꾸로 입혀진 채 발견됩니다

이 4차 사건이 터지고 범인이 비오는 날 붉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여성들만 노린다는 괴담이 퍼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집니다
또 경찰의 무능력이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자 경찰들은 화성시 주민들만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가 들어가고 수사대상만 2000여명에 달하게 되고 용의자로 지목된 한 주민은 급기야 자살까지 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5차 사건

1987년 1월 10일 19세 홍씨가 사망한채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으로 완벽하게 수사 방향을 잡지만 연쇄살인 사건을 간첩들이 대한민국을 교란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거라며 간첩 살인사건으로 몰아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고문 기술자로 유명한 이근안을 수사현장에 투입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기기도 합니다
6차 사건

여태껏 1~5차까지의 사건은 사실 343번 지방국도를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난것이었는데 6차 사건은 343번 지방국도는 아니었지만 도보로 이용가능한 거리에서 1987년 5월 2일 29세 박씨가 사망한 채 발견이 됩니다

사실 이 사건에서 범인이 발자국을 남겼었으나 소나기에 의해 발자국이 함몰, 결국 크기 조차 가늠하지 못한채 이 중요한 단서는 사라지게 됩니다
7차 사건
7차 사건은 6차사건이 일어나고 약 1년 4개월만인 1988년 9월 7일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54세 안모씨였으며 이때 범인은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하는데 여성의 몸속에서 복숭아 6조각 정도가 발견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범인은 자신의 몽타주를 남기게 됩니다
논길에서 달려오던 용의자를 버스기사가 태워주게 되는데 이때 용의자가 진흙이 묻은 신발을 본네트에 올리고 침까지 뱉어 버스 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용의자가 버스기사에세 담배불을 빌리면서 버스기사가 용의자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게 되고 손톱에 조그맣게 봉선화를 물들였던것 까지 보게 됩니다

사실 범인은 몇차례 미수사건이 있었는데요
2차 3차 사이에 박모씨 미수사건이 있었는데 박모씨는 범인이 20대중반의 나이에 키165~170 cm였으며 손이 매우 부드러웠다고 진술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1986년 9월 첫사건이 일어나기 전 화성군 태안읍에서는 1986년 2월부터 7월까지 총 7건의 성폭행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도 범인의 키가 그리 크지않은 165~170cm의 키에 마른 체형을 가졌으며 손이 매우 부드러웠다는 진술들이 나오는데요
이는 버스기사가 목격한것과 2,3차 사이 미수사건의 피해자가 진술한 것이 상당부분 일치합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의 속옷이나 겉옷을 손을 결박하는데 사용하고 재갈을 물리고 팬티를 머리에 씌우는 것까지 범행 수법도 상당히 똑같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8차 사건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1988년 9월 16일 14세 박양이 사망한 사건이고 이 사건의 범인 윤씨는 검거가 됩니다
9차 사건 , 10차 사건


한동안 사건이 잠잠하던 1990년 11월 15일 14세 김양은 병점역 부근에서 오후 6시 30분경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이 사건때 기적적으로 40일만에 범인의 정액을 김양의 교복 왼쪽 옷깃에서 발견, 일본에 최초로 DNA감정을 의뢰하게 되고

뒤이어 1991년 4월 3일 69세 권씨 10차 사건에서도 범인의 DNA를 발견하지만 9차와 10차의 DNA는 동일인이 아닌것으로 판명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범인은 종적을 감춥니다

연쇄살인으로 봤던 이유는 범행들의 공통점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인데요







옷을 벗겼다가 다시 옷을 입혀 놓는 점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범인을 잡을뻔한 결정적 기회가 두번 있었는데요
87년 5월 어느 자매가 누군가에게 끔찍한 일을 당할뻔하지만 극적으로 탈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본 피의자가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와 매우 비슷한 몽타주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두달 후 그 자매는 수원버스터미널에서 그 강간미수범을 우연히 보게 됐고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만 파출소 순경복을 입고 다가가자 범인이 바로 도주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6차와 7차사이 1987년 12월 24일 여고생성폭행피살사건이 생기는데 발생장소가 화성이 아닌 수원시 화서역 부근 논 한가운데 였으며 시신유기 방법이 화성연쇄살인과 매우 흡사했었습니다
화성과 수원은 공조수사를 했으며 마침내 유력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강압수사로 용의자는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고 37일만에 죽으면서 수원과 화성의 공조수사도 자연스럽게 종결됩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일대에서 벌어진 10건의 부녀자강간실인사건입니다
용의자만 2000여명 수색 병력만 200만명이 투입됐던 사건이지만 안타깝게도 2006년 4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과학수사가 조금만 발달했었더라면 경찰분들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일을 처리했더라면 과연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JTBC 스포트라이트에서 추청한 범인의 몽타주를 다시 한번 잘 살펴봐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