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MVP 3회 이상 수상자를 알아보자

[MLB] MVP 3회 이상 수상자를 알아보자

익_n5s29p 13.9k 19.09.01

사이영 상 3회 이상 수상자를 알아보자 :http://gezip.net/bbs/board.php?bo_table=realtime&wr_id=1807488&page=3


이번엔 mvp 3회 이상 수상자들을 들고 왔습니다.

대부분이 50년대 이전의 선수들이라 영상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ㅜㅜ

직접 자료 찾고 움짤 따서 글쓰느라 헤비 업로더분들처럼 많이 올리지도 못하고 빨리 묻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게 써서 올린 글이 베스트에 가니 죤나 좋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MVP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따로 설명 안해도 되겠죠


역대 최다 MVP수상자는 7회의 배리 본즈입니다. 하지만 아시죠? 거릅니다.

그를 제외하고 최다 수상은 3회이며 총 8명의 선수가 3회 수상했습니다. 아마 이번 시즌 마이크 트라웃이 MVP후보 중 가장 압도적인 선수이니 올 시즌이 끝나면 9명으로 늘겠군요. 트라웃의 역대 MVP 최다 수상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럽게 찾기 힘들었네


요기 베라 3회

통산 .285-.348-.482 ops .830 358홈런 2150안타 1430타점 1175득점

1951 .294-.350-.492 ops .842 27홈런 161안타 88타점 92득점

1954 .307-.367-.488 ops .855 22홈런 179안타 125타점 88득점

1955 .272-.349-.470 ops .819 27홈런 147안타 108타점 84득점


요가 잘하게 생겼다고 해서 생긴 그의 별명 "요기"는 베라가 선수 생활 내내 사용했던 등록명이었다.(진짜다. 본명은 로렌스 피터 베라)
양키스의 전설적인 명포수 빌 디키의 뒤를 이어 받은 베라는 3번의 MVP를 수상하면서 양키스에서만 무려 10개의 우승반지를 손에 낀다. 베라는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수비에서도 통산 도루 저지율이 47%에 육박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는데, 148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도 베라가 가지고 있다.
또한 1954년에는 돈 라슨과 함께 월드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은퇴 후 양키스의 감독을 맡게된 베라는 첫 해부터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카디널스에 패하고 그 다음 날 감독직에서 잘렸다. 분노한 요기 베라는 메츠로 넘어가서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최고의 명언을 남기면서 메츠를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킨다. 베라의 경질은 필 린츠라는 선수의 하모니카 때문에 언성을 높힌게 신문에 보도되어, 선수 통제를 못한다고 잘린 게 가장 큰 원인 이었다;;;
1984년 양키스는 겨우겨우 베라를 다시 감독으로 임명했으나 월드시리즈 우승만을 짖어대던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베라를 또 쫒아냈다. ㄹㅇ 개빡친 베라는 그 후 14년간 양키스와 상종하지 않았고, 베라가 양키스에게 쫒겨난 두 번의 사건 이후 두 번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화가 난 팬들은 베라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결국 99년 베라와 스타인브레너는 화해했는데 그 날은 1954년 월드시리즈 퍼펙트 게임을 기념하는 요기 베라 데이였다. 그리고 그 날, 양키스의 선발 데이비드 콘은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오.. ㅅㅂ)





요기 베라보다 더 찾기 힘들었다...

로이 캄파넬라 3회
통산 .276-.360-.500 ops .860 242홈런 1161안타 856타점 627득점
1951 .325-.393-.590 ops .983 33홈런 164안타 108타점 90득점
1953 .312-.395-.611 ops 1.006 41홈런 162안타 142타점 103득점
1955 .318-.395-.583 ops .978 32홈런 142안타 107타점 81득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 다저스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선수였다.
니그로 리그에서 오래 뛰었고, 교통사고로 인해 일찍 은퇴해서 누적은 요기 베라에 조금 뒤쳐지지만, MVP를 3회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AL에 요기 베라가 있었다면, NL에는 로이 캄파넬라가 있었다.
니그로 리그 시절 "검은 루스"라 불리며 흑인이었기 때문에 신이 되지 못한 전설의 포수 조시 깁슨에게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캄파넬라는 1948년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포수가 되었다.(메이저리거를 꿈꾼 깁슨은 뇌종양 제거 수술까지 거부하면서 메이저리그 입성을 기다렸으나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가 사망한 지 3개월 후에 그가 친동생처럼 아끼던 캄파넬라가 대신 꿈을 이뤘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포수 최초 40홈런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MVP를 3번이나 수상한 캄파넬라는 1958년, 귀가 도중 빙판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는 대형 교통사고로 목뼈와 척추가 부러지는 바람에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되었다. 설상가상 얼마 후 그의 아내마저 그를 떠났다.
의사는 캄파넬라가 평생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며, 10년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캄파넬라는 피나는 노력끝에 두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사고 후 35년을 더 살았다.
1949 시즌이 끝나고 캄파넬라는 니그로 리그에서 한 흑인 선수를 발견하고 구단에 알렸으나 스카우터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 선수는 다저스 최고의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데려간다. 그가 바로 역대 5손가락 안에 꼽히는 역대최고의 5툴 플레이어 윌리 메이스였다.






조 디마지오 3회
통산 .325-.398-.579 ops .977 361홈런 2214안타 1537타점 1390득점
1939 .381-.448-.671 ops 1.119 30홈런 176안타 126타점 108득점
1941 .357-.440-.643 ops 1.083 30홈런 193안타 125타점 122득점
1947 .315-.392-.522 ops .913 20홈런 168안타 97타점 97득점

The Yankee Clipper, 1930년대 미국 최고의 슈퍼스타
1920년대에 루스, 1990년대에 그리피, 2000년대에 지터가 있었다면 1930년대에는 디마지오가 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무릎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디마지오의 영입에 유일하게 뛰어든 팀이 양키스였다. 그는 루스가 떠난 자리를 메꾸며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올랐으며 1939년에 첫 MVP를 차지했다.
디마지오는 1941년 4월 15일을 시작으로 7월 1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까지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웠다. 다음 날, 3타수 무안타로 물러난 디마지오는 18일부터 8월 2일까지 또다시 16경기 연속안타를 몰아쳤다. 만약 17일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했다면 디마지오는 73경기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이 엄청난 임팩트로 최후의 4할 타자로 남은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두번째 MVP를 수상한다.
당시 미국인들의 인사가 "오늘도 디마지오가 안타를 쳤습니까?"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디마지오의 기록은 미국 최고의 관심사였다.
1947년 디마지오는 세 번째 MVP를 수상했는데 당시 테드 윌리엄스의 성적이 압도적이었으나, 기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디마지오가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MVP를 수상한다. 정상적인 투표였다면 본인은 지금 디마지오 대신 테드 윌리엄스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1951년 부진이 시작되자 디마지오는 미련없이 은퇴해버렸다. 디마지오의 뒤를 이어 양키스 간판스타의 계보는 미키 맨틀이 이어 나간다. 참고로 디마지오는 처음 입단한 맨틀을 보면서 자신이 밀려날 것을 직감했고, 일부러 맨틀에게 쌀쌀맞게 굴었다고 한다.
디마지오하면 떠오르는 다른 하나는 마릴린 먼로일 것이다. 죽기전 유언이 "이제야 마릴린의 곁으로 갈 수 있겠군."이었지만 사실 마릴린 먼로는 디마지오에게 수없이 때렸고 야구 배트를 이용해 가정폭력을 당했다. 결국 폭력을 못 견딘 먼로는 이혼장을 내밀었고, 디마지오가 먼로의 죽음 이후 평생 혼자 살며 1주일에 3번씩 그녀의 무덤에 장미꽃을 놓았다고 로맨티스트로 미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심각한 가정폭력을 일삼아 친아들에게까지 비난 받던 인물이었다.
디마지오는 야구로 성공했지만 가족들에게는 실패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팍스가 스윙하는 영상을 이 하나밖에 못 구했다...

지미 폭스 3회
통산 .325-.428-.609 ops 1.038 534홈런 2646안타 1452타점 1751득점
1932 .364-.469-.749 ops 1.218 58홈런 213안타 169타점 151득점
1933 .356-.449-.703 ops 1.153 48홈런 204안타 163타점 125득점
1938 .349-.462-.704 ops 1.166 50홈런 197안타 175타점 139득점

Beast, Double-X. 통산 3-4-6의 최고의 우타자. 폭팔적인 파워를 자랑했던 당대 최고의 슬러거
별명이 Beast다. 생김새와 홈런 수를 보라.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첫 30홈런을 기록한 1929년부터 마지막 30홈런을 기록한 1940년까지 12년 평균 .334 .440 .644 ops 1.083 40홈런 137타점을 기록했다.
그 유명한 푸홀스의 아름다운 10년 평균이 .331 .426 .624 ops 1.050 41홈런 123타점이었으니 80여년전에 등장한 푸홀스라고 생각하면 쉽다.
팍스는 올타임 1루수를 평가할 때 항상 역대 최고라 손꼽히는 루 게릭의 뒤를 이어 2순위로 뽑힌다.
그에 관한 이야기에는 팍스의 압도적인 파워가 드러나는 얘기가 많은데 한 손으로 그 무거운 쟁기를 번쩍 드는 걸 보고 스카웃 했다는 설화가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그의 파워는 무지막지해서 193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기록한 홈런은 추정 비거리가 183m에 달한다는 얘기가 있고...
그가 기록한 58홈런은 2017년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59홈런을 기록하기 전까지 85년간 우타자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그 동안 오로지 행크 그린버그만이 그와 같은 홈런수를 기록한 우타자였다.
하지만 그는 평소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이로 인해 빠른 하락세가 찾아왔다. 보스턴으로 이적하면서 많은 연봉을 받게 되자 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그의 알코올 중독을 막을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거기에 부상마저 겹치며 결국 그는 루스를 넘지 못하고 은퇴한다.
물론 은퇴 후 자신이 번 돈을 죄다 술값에 박았다.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한 루게릭을 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술로 인한 빠른 하락세였다.




1956년 월드시리즈 1차전 장외 투런 홈런

아직도 배트플립이 불편한 메이저리그지만 미키 맨틀은 50년 전부터 당당히 배트를 집어 던졌다.

미키 맨틀 3회
통산 .298-.421-.557 ops .977 536홈런 2415안타 1509타점 1676득점
1956 .353-.464-.705 ops 1.169 52홈런 188안타 130타점 132득점
1957 .365-.512-.665 ops 1.177 34홈런 173안타 94타점 121득점
1962 .321-.486-.605 ops 1.091 30홈런 121안타 89타점 96득점

Mickey could do everything,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중 한명이며, 최고의 스위치 히터. 유리몸으로 인해 루스를 넘지 못한 사나이
광산부터 농사일까지 잡다한 일을 하며 자란 미키 맨틀은 그 때 길러진 무지막지한 손목과 어깨 힘으로 최고의 홈런타자로 성장한다.
양키스 스카우터는 맨틀을 보고 루 게릭의 후계자를 찾았다며 맨틀의 졸업 당일 계약을 맺어 양키스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양키스에 입단한 맨틀은 디마지오의 직감대로 그를 밀어내고 양키스의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맨틀은 1955년부터 1962년까지 지미 팍스의 전성기를 그대로 재현해 내면서 MVP3회, 홈런왕 4회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 브루클린 다저스의 듀크 스나이더와 함께 뉴욕 3대 중견수로 불렸고, 거기에 루스와 디마지오를 계승한 양키스 간판 슈퍼스타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파워의 상징이었고, 그의 홈런은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이 아닌 140m는 우습게 넘어가는 맘모스급 홈런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메이저리그 공식 최장거리 홈런도 맨틀의 170m 비거리의 홈런이고, 비공식적이지만 기하학적 계산을 동원해서 비거리를 추정한 그의 홈런들은 198m급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의 홈런들도 심심찮게 나왔다고 한다. 덕분에 맨틀의 홈런은 야구 팬들 사이의 단골 논쟁거리가 되었다.
또한 그는 구 양키스타디움에서 장외 홈런을 기록한 2명 중 한명이었다.(다른 한 명은 검은 루스라 불리던 조시 깁슨)
1961년 미키 맨틀은 로저 매리스와 함께 M&M포를 결성하고 나란히 루스의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도전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매리스가 61홈런을 기록하며 루스를 넘었고 맨틀은 54홈런에서 멈췄다. 팬들은 맨틀이 루스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고 여겼고, 매리스는 살해협박까지 받는 등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사실 맨틀은 당시 스테로이드 주사바늘을 잘못써서 종기가 나서 54홈런에 그쳤다. 당시 스테로이드가 금지 약물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ㅜ)
유리몸의 대명사였던 맨틀은 루스를 넘지 못하고 은퇴했고, 집안 내력으로 인해 맨틀은 자신도 요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일을 불태우듯이 허슬플레이를 했다. 하지만 맨틀은 63세까지 살았고, 훗날 그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자기관리에 신경 쓸 걸 그랬네..."라며 후회했다.
훗날 양키스 레전드들을 모셔놓고 치룬 기념행사에서 양키스타디움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뭐냐고 묻자 맨틀은 불펜 옆에서 펠X치오를 받은 것이라고 답변 했....




올스타전에서 요기 베라가 지루하다고 하자 자기가 끝내겠다는 말을 하고 끝내기 홈런을 날려버렸다.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하는 순간

스탠 뮤지얼 3회
통산 .331-.417-.559 ops .976 475홈런 3630안타 1951타점 1949득점
1943 .357-.425-.562 ops .988 13홈런 220안타 81타점 108득점
1946 .365-.434-.587 ops 1.021 16홈런 228안타 103타점 124득점
1948 .376-.450-.702 ops 1.152 39홈런 230안타 131타점 135득점

Stan the Man(the Man은 최고의 수사다. 푸홀스 마저 the Man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엘 옴브레라는 별명을 붙혀주려고 하자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고 거절할 정도...)
통산 타율이 .331이다. 그나마도 38세 이후에 3할 타율 밑으로 떨어지면서 까먹은거지 데뷔 후 17년간 통산 타율이 .340이었다.... 그리고 17년간 단 한번도 2할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에 훌륭한 성품도 갖춰 전 리그적으로 사랑받던 선수였는데, 1957년 신시내티 레즈 팬들의 올스타 몰아주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스탠 뮤지얼의 자리만은 지켜졌다. 또한 그는 선수 생활동안 단 한 번도 심판 판정과 벤치의 작전에 이의 제기를 한 적이 없었다.
스탠 뮤지얼은 한국에 방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팀의 김양중이 던진 스트라이크가 볼판정을 받자 다음 공에 일부러 헛스윙을 하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굉장히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뮤지얼은 24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3번의 MVP, 7번의 타격왕, 월드시리즈 우승 3회를 달성했다.
7번의 타격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고도 언급이 잘 안되는 이유는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같이 활동하던 선수들이 56경기 연속안타최후의 4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뮤지얼은 2013년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NHL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전 선수들이 6번 뮤지얼의 저지를 입고 나와 경기를 했고, 카디널스는 스탠 뮤지얼 추모 행사를 열었다. 중소 도시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세인트루이스 전 시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사후 2013년 7월 3일 카디널스와 에인절스의 경기가 스탠 뮤지얼 메모리 데이로 열렸는데, 당시 시구자가 스탠 뮤지얼의 손자였고, 시구를 받은 사람은 카디널스에서 아름다운 10년을 보내며 뮤지얼의 계승자라고 불릴 뻔한 푸홀스였다.
스탠 뮤지얼은 푸홀스가 카디널스로 이적한 것에 대해 가장 섭섭해한 사람이었다.



통산 500홈런의 순간

마이크 슈미트 3회
통산 .267-.380-.527 ops .908 548홈런 2234안타 1595타점 1506득점
1980 .286-.380-.624 ops 1.004 48홈런 157안타 121타점 104득점
1981 .316-.435-.644 ops 1.080 31홈런 112안타 91타점 78득점
1986 .290-.390-.547 ops .937 37홈런 160안타 119타점 97득점

경쟁자조차 존재하지 않는 역사상 최고의 3루수
당시 아메리칸리그 캔자스 시티 로열스의 조지 브렛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양분하는 최고의 3루수였다.
에디 매튜스의 파워브룩스 로빈슨의 수비를 동시에 갖췄다고 평가 받는 그는 통산 MVP 3회, 골드 글러브 10회, 실버 슬러거 6회를 수상했고, 1980년 월드시리즈 MVP도 차지했다.
각 포지션 별로 통산 최고를 논할 때 3루수 부문은 어떠한 이견도 없이 마이크 슈미트의 차지고, 2위 싸움만 치열하게 벌어진다. 압도적으로 포지션 최고자리를 차지하는 선수는 그를 제외하면 우익수 자리의 베이브 루스 정도밖에 없다.
그는 필리스의 슈퍼에이스 스티브 칼튼과 함께 오랜 필리스의 암흑기를 끝내고 팀을 전성기로 이끌었고, 1980년 월드시리즈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98년만에 필리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1986년의 MVP를 수상한 그는 1988년 갑자기 어깨 회전근을 다치면서 강견을 잃었고, 무릎과 허리를 다치면서 장타력마저 잃어버렸다. 불과 1년 전에 35홈런과 ops 0.936을 기록했던 그는 1939년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고, 역대 최다 홈런과 2000타점에 도전할 만한 선수로 평가받던 슈미트의 질주는 끝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은퇴는 본인만 아니라 팬들도 너무나 안타까워했고, 은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팬투표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선수가 올스타에 뽑힌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선수시절, 암페타민을 복용했음이 밝혀졌다. 암페타민이 금지약물로 지정된 건 2004년이고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과 같이 경기력 향상 약물이 아닌 각성제로 분류되고 있지만 스포츠 선수의 순수성에 대해 중시하게 생각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지긴 한다.




함부로 설레발 치다간 이렇게 된다.(05년 NLCS에서 투수 릿지는 미리 샴페인 준비하면서 설레발 치다가 푸홀스에게 정의구현당했다. 요기베라가 그렇게 경고했거늘...ㅉㅉ)

알버트 푸홀스 3회
통산 .300-.379-.550 ops .929 652홈런 3182안타 2061타점 1818득점 (2019. 09. 01자 기록)
2005 .330-.430-.609 ops 1.039 41홈런 195안타 117타점 129득점
2008 .357-.462-.653 ops 1.114 37홈런 187안타 116타점 100득점
2009 .327-.443-.658 ops 1.101 47홈런 186안타 135타점 124득점

The machine, 발전이 없는 타자, 카디널스의 레전드이자 에인절스의 망전드
2001년 데뷔와 동시에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힐만한 아름다운 10년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의 1루수 & 우타자 자리를 바라보았었고, 카디널스의 전설인 스탠 뮤지얼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었다.
데뷔와 동시에 리그를 폭격한 푸홀스는 향후 10년 평균 .331 .426 .624 ops 1.050 41홈런 123타점를 기록하였고, 3번의 MVP를 수상했다.(배리 본즈만 아니었다면 통산 MVP 5회 수상도 가능했다.) 10년간 매 해 40홈런을 기록하는 슬러거가 이치로와 마우어의 컨택능력을 보여준 셈.
그의 꾸준한 활약 덕분에 한국 팬들은 70홈런 칠 포텐셜로 50홈런도 못치는 발전 없는 푸홀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볼넷/삼진 비율은 갈수록 늘어났다. 동시대의 프린스 필더나 라이언 하워드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은 삼진을 기록했다. 그냥 완전체인 선수였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고 이 틈을 타서 LA 에인절스가 10년 250M과 전구단 트레이드 거부권을 제시하면서 푸홀스를 잡았다.(왜 그랬어... 왜....)
그렇게 에인절스로 이적한 푸홀스는 귀신같이 대폭락을 하기 시작했고, 2017년 600홈런, 2018년 3000안타, 그리고 올해 2000타점을 달성한다.(그러면 뭐하냐고...)
카디널스에서 11년간 ops1.0을 넘기고 40홈런씩 치던 푸홀스는 에인절스에서 8년간 연 평균 ops 0.776과 26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거기다 족저근막염에 시달리는 바람에 매번 부상과 수술, 회복을 반복하고 있고, 그의 나이를 속인 것에 대한 의혹이 이제는 확신의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혹자는 그래도 꾸준히 20~40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100타점을 찍어주지 않냐라고 얘기하는데 비율 스탯을 봐라. 그리고 그의 앞에 나오는 타자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마이크 트라웃이다. 전성기 푸홀스 앞에 트라웃이 있었다면 푸홀스는 매해 150타점은 찍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에인절스로 넘어온 푸홀스는 최악의 타격과 스피드로 고액의 연봉을 잡아먹으며 에인절스의 리빌딩을 방해하는 돈먹는 하마다.(심지어 족저근막염 때문에 수비도 안되고 트레이드도 못한다...)
명전 입성이야 당연히 첫턴이겠지만, 지미 폭스와 루 게릭을 소환하고 스탠 뮤지얼을 소환하던 그는 지금 통산 타율 3할도 지키기 힘든 타자가 되었으니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아마 올 시즌이 끝나면 이 리스트에 트라웃이 합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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