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_pu12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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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3

《고려사》에 기록된 사관의 글
왕은 성품이 호협하고 주색을 좋아했으며, 놀이와 사냥에 탐닉해 황음무도하게 행동했다.남의 처나 첩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으면 친소와 귀천에 관계없이 모조리 후궁으로 들이는 바람에 그 수가 100명이 넘었다. 또한 재물에 관계되는 것이면 아무리 자잘한 것이라도 따져 항상 이익을 올리려 하니, 군소배들이 다투어 계략을 올려 남의 토지와노비를 빼앗아 모두 보흥고(寶興庫)에 소속시켰으며 궁중의 마굿간을준마로 채웠다. 또 회회(回回) 사람[23]들에게 베를 주고 그에 대한 이자[24]를 챙겼으며소를 도축[25]해 그 고기를 날마다 15근씩 바치게 했다. 새 궁궐을 지을 때에는 깃발을 벌여 놓고 북을 설치한 다음 친히 담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며 독려했다. 궁궐이 완성되자 각 도에서 옻칠을 거두어 들였으며, 단청을 올릴 물감을 기한보다 늦게 가져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베를 징수했다. 관리들은 이를 기회로 백성들을 가렴주구했으며 백성들은 근심과 원한에 싸였다. 군소배들은 출세하고 충직한 사람들은 쫓겨났으며 한 사람이라도 직언하면 반드시 사형해버리니, 사람들이 처형당할까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는 자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