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팬에서 안티, 사생팬까지… 한국 팬덤문화 어디까지 왔나

열성팬에서 안티, 사생팬까지… 한국 팬덤문화 어디까지 왔나

익_7mr1c9 21.7k 17.07.07
열성팬에서 안티, 사생팬까지… 한국 팬덤문화 어디까지 왔나


팬(FAN)의 사전적 정의는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국내 최초 ‘아이돌형 팬덤문화’의 시초는 조용필의 ‘오빠부대’다. 물론 조용필 전에도 팬클럽은 존재했다. 가수 남진의 팬클럽 ‘남진사랑’과 나훈아의 팬클럽 ‘나훈아 세상’은 마치 90년대 HOT와 젝스키스의 팬클럽처럼 격돌했다. 

40여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스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팬덤문화도 발전했다. HOT와 젝스키스 팬들이 오프라인에서 맞붙은 것도 벌써 20년 전이다. 이제 팬덤은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이다. 팬들은 스타를 소비하고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며 스타가 잘못하면 준엄히 꾸짖고 때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한국의 팬덤 문화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1000억원대 이른 팬덤산업…스타이름으로 기부까지 
 
직장인 유나영(35, 가명)씨는 보이그룹 샤이니의 열성팬이다. 유씨는 샤이니의 굿즈를 모으고 샤이니의 국내 콘서트는 물론 가까운 일본 콘서트 관람을 위해 기꺼이 연차를 사용한다. 샤이니가 음반을 낼 때면 음원사이트에서 ‘총공’(총공격,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기 위해 팬들이 집단으로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10대 팬처럼 스밍(스트리밍)과 탈재(이미 가입한 음원사이트를 탈퇴한 뒤 재가입)도 반복한다. 유씨의 최애(最愛, 가장 사랑하는) 멤버는 태민. 그는 요즘 태민의 피규어 인형을 종류별로 사 모으는 데 재미를 붙였다. 유씨는 “중학생 때부터 지켜본 스타가 무럭무럭 자라나 어엿하게 한류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했다. 
 
팬덤문화는 더이상 10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Mnet과 함께 ‘프로듀스101’ 시즌2 투표를 진행한 티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실제 투표비중은 20대, 30대에서 과반수이상 높게 형성되고 40대까지 고르게 분포돼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3040팬들은 자신을 ‘XX앰’이라고 지칭한다. ‘앰’은 엄마를 의미하는 팬들의 은어다. 조카뻘 연습생들에게 ‘오빠’라고 할 수 없는 ‘이모팬’들의 고민이 표현된 셈이다.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한 한류스타의 기획사에는 외국인 노인 팬들이 서툰 한국어로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꼭 보고 싶다”고 통사정하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팬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스타를 소비하는 ‘굿즈’ 문화도 나날이 성장했다. 정확한 수치는 산출되지 않았지만 가요관계자들은 국내 ‘굿즈’산업을 대략 1000억원대로 추산한다. 스타의 앨범과 브로마이드는 기본이고 공연장에서 팬들에게 필수인 형광봉도 2~3만원대에 판매된다. 부채, 휴대용 선풍기, 티셔츠, 모자는 물론이고 스타의 초상권을 활용한 식품과 스타의 이름을 딴 화장품까지 등장했다. 마음만 먹으면 일상의 모든 것을 스타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최근 주가가 높은 방탄소년단이 교통카드 ‘티머니’와 손잡고 내놓은 ‘방탄소년단 CU플러스티머니’도 완판 직전이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정판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거의 완판됐다”고 전했다. 가요기획사에서 현직 ‘팬매니저’로 근무 중인 A씨는 “10~20대가 주로 스케줄 참여에 적극적이라면 30대 이상 연령층은 공연 티켓 구매나 상품 구매 이벤트에 대한 참여도가 높은 편이며 상품 소비도 과감한 편”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하철 역 전광판을 사고 버스를 광고로 뒤덮는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열성팬들은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들이 최종까지 무사히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응원광고를 지하철 전광판에 게시했다. 광고가격은 한달 단위로 대략 100만원이 넘는다.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에 게시된 ‘프로듀스101’ 관련 광고는 대략 30여개로 추산된다. 이 프로그램 외에도 스타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축하 광고를 게시한다. 해외 팬들은 스케일이 다르다. 지난 4월에는 엑소의 중국 팬클럽 바이두 엑소바가 엑소 데뷔 5주년을 응원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옥외광고판에 축하 영상을 특별 방영했다. 
 
팬들은 스타의 이름으로 숲을 만들거나 기부를 하기도 한다. 그룹 신화, 아이유, 김우빈, 지드래곤의 팬들은 스타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했다. 서태지의 팬들은 브라질의 열대우림 지대인 과피 아수에 ‘서태지 숲’을 만들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팬들은 식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해외 낙후 지역에 엑소의 이름으로 우물을 기증했다. 지드래곤의 팬들은 매년 그의 생일인 8월 18일에 818만원을 기부해왔다. 




◇팬들 잘못에 등 돌리는 안티팬, 사생 넘은 테러협박까지 등장 
 
과거 팬들은 스타의 잘못과 상관없이 무조건 스타를 사랑하고 아꼈다. 2000년 HOT 강타가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로 조사를 받자 성난 팬들이 강남경찰서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사건은 지금도 ‘레전드’로 회자된다. 하지만 강산이 변하면서 팬들도 변했다. 스타의 잘못을 준엄히 꾸짖고 그럼에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등을 돌린다. 스타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주는 만큼 스타가 팬들을 존중하지 않거나 기만했을 때도 지지를 철회한다. 
 
지난해 충격적인 성추문에 휩싸인 JYJ박유천의 팬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한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디시인사이드 JYJ 갤러리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박유천을 지탄하며 향후 그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나 콘텐츠를 철저히 배척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퍼주니어의 일부 팬들도 두 차례 음주운전이 적발된 멤버 강인을 방출하라고 요구했다. 
 
팬들은 과거처럼 스타가 결혼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등을 돌리진 않는다. 다만 스타의 사소한 일상을 나누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팬들을 먼저 배려하지 않았거나 기만하는 조짐이 보이면 이 역시 보이콧의 대상이다. HOT의 리더 문희준은 20년이 넘는 오랜 팬들이 지지철회를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이들은 문희준이 크레용팝 소율과 결혼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았으며 아내 소율도 결혼 전 문희준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불손한 태도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슈퍼주니어 성민의 팬들도 성민의 소통부재에 분노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과거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던 팬덤문화의 주체가 스타에서 팬으로 넘어온 일대 사건이다. 
 
공개적인 보이콧은 아니지만 스타들이 몰래 사랑을 나누는 일명 ‘럽스타그램’도 팬들에게 분노의 대상이다. ‘럽스타그램’은 SNS의 일종인 인스타그램에서 스타가 자신의 연인과 사랑의 암호를 나눈 흔적이다. 한 가요관계자는 “몇몇 아이돌 스타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커플 반지나 목걸이 등을 착용하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남길 경우 팬들은 기만당했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고 귀띔했다. 
 
반면 스타들을 공포에 떨게 한 ‘사생팬’ 문제는 차츰 정화되는 분위기다. 한 가요관계자는 “사생팬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도 ‘사생은 팬이 아니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팬들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스타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는 룰이 존재한다. 가령 스타가 출국할 때 응원을 나가긴 하지만 비행기 탑승 뒤에는 그들만의 사적인 시간을 지켜준다. 
 
최근에는 사생을 넘어 테러 위협까지 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걸그룹 에이핑크는 팬을 지칭하는 한 남성이 “에이핑크를 살해하겠다”며 강남경찰서와 KBS, 에이핑크의 쇼케이스 현장인 마포구 서교동 메세나폴리스에 폭탄테러 위협을 가해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걸그룹 트와이스도 일본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염산테러 위협을 당했다. 에이핑크 소속사 플랜A의 최진호 대표는 “테러 위협을 당한 뒤 멤버들도 위축되곤 한다. 팬들과 소통하는 자리에서도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며 “테러 위협을 가하는 이들은 팬이 아니다. 이는 범죄일뿐”이라고 단언했다. 최대표는 테러위협과 함께 악성댓글, 기자 명함을 사칭하는 사생팬에 대해서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며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 바른 팬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악성댓글부터 시작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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