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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4
조태희(40) 분장 감독은 털 한올에도 성격을 심는 사람이다. 영화 '광해'에서 그는 배우 이병헌의 캐릭터를 수염에 담아내기 위해 2시간이 넘도록 한올 한올 일일이 손으로 붙였다. "그런데 관객분들이 영화가 끝나고 배우 콧수염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기억하진 못하시더라고요(웃음)."
그는 영화 '광해' '역린' '사도', 드라마 '명성황후' '태양인 이제마'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배우를 역사 속 왕으로, 신하로, 백성으로 그려온 17년 경력 분장사다. 2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조 감독은 "관객이 분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인물의 성격과 작품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이 이 일의 핵심"이라며 "영화를 보고 배우의 연기가 아닌 분장이 기억난다면, 실패한 분장"이라고 말했다. 오는 4월 23일까지 서울 종로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영화의 얼굴창조전'은 그의 17년 분장 인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그가 최근 6년간 참여했던 영화, 드라마 속의 분장 작품과 분장 도구, 스케치 등 500여점을 모았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유아인)가 썼던 가발과 망건 뒤에 서 있는 조태희 분장 감독. 그는 '남한산성'(왼쪽 아래) 주인공 이병헌의 온건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망건 관자를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 '광해'(오른쪽 아래)에서 중전(한효주)이 머리에 꽂은 비녀는 극 중 상황을 집약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김지호 기자·아라아트센터
영화 '남한산성'(2017) 출연 배우의 콧수염 분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물의 성격이 단번에 드러난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라며 조선을 침략한 청과 화친을 맺자고 주장한 최명길(이병헌)의 콧수염은 가늘고 길어 바람이 불면 갈대처럼 흔들릴 것만 같다. 반면 척화파(斥和派) 김상헌(김윤석)의 회색빛 수염은 굵고 거칠다. 조 감독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게, 그러나 느낌은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분장 일의 힘든 점이자 재미"라며 "아무도 모르지만 김상헌의 망건 관자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크게 만들어 위압적인 성격을, 최명길의 망건 관자는 절반 크기로 만들어 온건함을 강조했다"고 했다.
고증과 창작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조 감독은 "작품이 끝날 때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역사학과 교수님, 각종 역사 단체 회원분들로부터 전화가 불이 나도록 연락이 온다"며 "'왜 극 중 중전이 그때 가채를 틀지 않았느냐' '비녀의 모양이 사실과 다르다'고 할 때마다 이유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는다"고 했다.
"영화 '역린'이나 '광해'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장식을 분위기에 맞게 창작해내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 특징 없이 같은 장식을 하고 있다면, 미장센이라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조 감독이 꼽은 최고난도 작품은 지난해 개봉한 '안시성'.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7000명이 넘는 보조 출연자들을 고구려 병사로 분장시켰다. "요즘 사람들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해서 얼굴이 새하얗잖아요. 고구려인 중에 얼굴 하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농사짓다가 군대에 끌려온 병사들일 텐데요. 날마다 보디로션에 구릿빛 색소를 섞어 분장해줘야 했습니다."





